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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모스키노 (Franco Moschino) (1950. 2. 27 ~ 1994. 9.18)
45세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프랑코 모스키노는 그 만의 독특함과 차별성을 각인시켜 주었다.
18세에 미술공부를 시작으로 처음에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을 하였다. 7년간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다 본격적으로
디자이너 길에 들어서게 된다. 카뎃(Cadette) 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1983년 첫 개인 여성복라인을 출시하며 프랑코
모스키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3년 첫 개인 여성복을 출시 했을 당시 언론에서는 "패션계의 악동"이라 불릴 정도로 패션계의 정통을 깨뜨렸다.
그는 평범함을 거부한 개성, 기존 질서를 벗어난 유쾌함의 디자이너로 불릴 정도록 독특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냈다.
모스키노의 패션은 평범함을 거부한 기발하고 창의적인 독특함이 묻어 있다.
또한 깨어 있는 사고를 가진 천재적인 디자이너로 화려한 고가의 명품 디자이너들의 제품들과 현대 사회의 소비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고가의 모피와 플라스틱을 조합한 값비싼 재료에 값싼 재료를 접목시켜 "값비싼 재료와 값싼 재료의 조합 (Expensive Jacket)" 이라는 문구를 금사로 수놓은 캐시미어 재킷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렇듯 서로 다른 특성을 조합하여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과감함을 보여주려 했다.
모스키노는 자신의 다지인을 요리사와 비유하며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다자인과 시대적으로 대중들의 요구를 반영된 대중성을 잘 믹스한다고 주장했다.
오롯이 자신의 디자인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대중성을 디자인에 녹여내어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디자인 소재를 벼룩시장이나 스트리트 패션에서 찾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디자이너로서의 시각을 넓고 깊게 바라보며 대중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모스키는 또한, 여러가지 사회적 이슈들을 작품에 접목시켜 지적인 다지이너로도 유명하다.
패션이라는 분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회, 심리, 지리, 정신적인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으며, 이러한 정신을 투사할 수 있는 스크린이 의복이어야 한다는 주장 아래 직접적으로 디자인에 표현하기도 했다.
▶ 세계평화 => 반전심볼
▶ 에이스 퇴치 => 노란 스마일 심볼
▶ 사회적 차별반대 => 하트모양
▶ 베를린 장벽 무너질 때 => 벽돌을 다자인 모트브로 사용
사회 전반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이슈들을 디자인에 표현하여 알리기 위해 앞장선 흔치않은 천재 예술을 펼쳤던 디자이너이다.
패션쇼와 윈도우 디스플레이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고 마네킹이 아닌 살아있는 모델을 사용하였고 시장, 공연, 파티등
배경을 일상적인 배경으로 하고 모델 대신 이젤을 사용하는 등.. 매 전시마다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4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다향한 분야에 진출하였고 (향수, 칩앤시크, 인조모피), 언론을 통해 동물학대, 마약
폭력 등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에페 패션그룹 (Aeffe Fashion Group) 에 소속되어 동업자이자 친구였던 로셀라 자르디니가 총괄하고 있다.
그녀는 초현실적 특성과 대중적인 소재들을 지속적으로 재해석하여 독창적이고 신선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2020 fall collection 감상해보자.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보그 (V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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